영양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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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왕'''(嬰陽王) (재위 590년 ~ 618년)은 고구려의 제26대 왕으로 이름은 이름이 원(元) 또는 대원(大元)이다. [[평원왕]]의 맏아들로 평원왕 7년(565년)에 태자가 되었다. 590년에 평원왕이 죽자 보위에 올랐다. 영양왕은 즉위 초기의 불안정한 시기에는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자 [[수나라]]에 조공하였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의 기록을 보면 597년에 수나라 [[문제]](文帝)가 국서를 보내서 고구려를 침략할 야욕을 부리자, 598년 [[강이식]]을 병마원수로 봉하여 정병 5만으로 하여금 요서지역으로 출병케 하여 선제공격을 하였다. 이에 수나라 문제는 30만 대군을 동원하여 한왕 양량에게 임유관을 공격해하고 주라후로 하여금 보급을 맡겼으나 주라후의 보급선을 미리 알아챈 고구려 군에 의해서 주라후의 보급선이 격파되어 군량미 보급이 끊어지고, 장마를 만나 패배하고 물러갔다. 603년에는 장군 고승(高勝)을 보내 신라의 북한산성을 쳤고, 607년에는 백제 송산성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석두성을 공격하여 포로 3천 명을 사로잡았다. 608년에는 신라의 북쪽 변경을 습격하여 8천 명을 포로로 잡았고, 우명산성을 함락시켰다. 612년 수나라 [[양제]](煬帝)가 113만 대군으로 침공하자, [[을지문덕]]을 보내어 살수에서 우문술의 30만 별동대를 무찔렀다. 수나라는 고구려에 대한 원정으로 국력이 약해져서 계속 반란이 계속되다가 617년에 멸망하게 되고, 영양왕은 이듬해인 618년에 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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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왕'''(嬰陽王) (재위 590년 ~ 618년)은 고구려의 제26대 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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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10일 (금) 20:09 판
영양왕(嬰陽王) (재위 590년 ~ 618년)은 고구려의 제26대 왕으로 이름은 이름이 원(元) 또는 대원(大元)이다. 평원왕의 맏아들로 평원왕 7년(565년)에 태자가 되었다. 590년에 평원왕이 죽자 보위에 올랐다. 영양왕은 즉위 초기의 불안정한 시기에는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자 수나라에 조공하였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의 기록을 보면 597년에 수나라 문제(文帝)가 국서를 보내서 고구려를 침략할 야욕을 부리자, 598년 강이식을 병마원수로 봉하여 정병 5만으로 하여금 요서지역으로 출병케 하여 선제공격을 하였다. 이에 수나라 문제는 30만 대군을 동원하여 한왕 양량에게 임유관을 공격해하고 주라후로 하여금 보급을 맡겼으나 주라후의 보급선을 미리 알아챈 고구려 군에 의해서 주라후의 보급선이 격파되어 군량미 보급이 끊어지고, 장마를 만나 패배하고 물러갔다. 603년에는 장군 고승(高勝)을 보내 신라의 북한산성을 쳤고, 607년에는 백제 송산성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석두성을 공격하여 포로 3천 명을 사로잡았다. 608년에는 신라의 북쪽 변경을 습격하여 8천 명을 포로로 잡았고, 우명산성을 함락시켰다. 612년 수나라 양제(煬帝)가 113만 대군으로 침공하자, 을지문덕을 보내어 살수에서 우문술의 30만 별동대를 무찔렀다. 수나라는 고구려에 대한 원정으로 국력이 약해져서 계속 반란이 계속되다가 617년에 멸망하게 되고, 영양왕은 이듬해인 618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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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평원왕 |
제26대 고구려 왕 590년 - 618년 |
후임 영류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