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은 기술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외치는 남녀가 있다. 자고로 이성에게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번듯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법. 외모와 직업, 능력과 '끼' 등을 겸비해야 한다. 이것은 기본이고 여기에 능청과 내숭, 적당한 속임수도 부릴 줄 알아야 한다. 지원(손예진 분)과 민준(송일국)은 그런 면에서 제대로 된 '선수'다.

그런데 각자의 '과학'으로 강호를 평정해나가던 둘이 그만 '눈이 맞았다'. 각자 서로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려고 하는 이들 '선수'들의 지략과 활약은 상상 이상. 영화는 이렇듯 둘의 치고받는 에피소드를 가볍고 유쾌하게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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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한 달 만에 전국 230만명을 모은 '광식이 동생 광태'의 바통을 이어 12월 연인들을 공략하는 또다른 느낌의 로맨틱 코미디. 매듭이 촘촘하지는 않으나 이만하면 귀엽게 봐줄 만한 매력이 다분하다.

그 중 가장 큰 매력은 배우 손예진의 놀랄 만한 변신과 활약이다. 일련의 작품을 통해 청순한 매력을 뽐내왔던 그가 "왜 이제야!"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킬 만큼 천연덕스러운 '작업녀'로 변신했다. 후안무치하고 대담무쌍하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냈다. 당장 전작 '외출'과는 180도 다른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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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에서는 나이답지 않은 성숙한 연기로 박수를 받은 그는 전혀 다른 영화 '작업의 정석'을 통해 나이에 꼭 맞는 발랄한 매력을 물씬 뿜어내는 데 성공했다. 만일 그에게 한치의 주저함이라도 있었다면 이 영화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손예진의 변신 역시 지극히 부자연스럽게 다가왔을 터.

그러나 손예진은 자신이 넘쳤다. 트로트 중에서도 아저씨들이나 좋아할 만한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고 양푼에 밥을 비벼 먹다가도 '작업'의 대상 앞에서는 천하의 우아한 공주처럼 구는 그의 연기는 영화의 숱한 빈틈들을 봉합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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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맹신자처럼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며, 병원 응급실에서는 발작이 난 듯한 흉내를 내고, 때로는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구차한 모습도 연출하는 그의 '현란한' 연기 메들리는 이 영화가 한편의 깜찍한 오락이 되도록 이끈다.

전작 '선물'과는 전혀 다른 영화를 내놓은 오기환 감독은 "이 영화는 연애의 정석도 아니고, 결혼의 정석도 아니다. 작업의 정석이다. 요즘 20대 젊은이들의 사랑의 모습이다. 20대 친구들에게 즐겁게 사랑을 나누라고 독려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작업'이 화두라서인지 나름의 철학이나 감동도 기대하기 힘들다. 로맨틱 코미디가 줄 수 있는 사랑에 대한 핑크빛 환상도 없다. '로맨스'보다는 '코미디'에 힘을 줬기 때문. 그럼에도 눈살이 찌푸려지거나 한숨이 나오지는 않는다.

2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윤고은 기자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