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1933년 카자흐스탄 대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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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 대기근(카자흐어: Қазақстандағы аштық 카자크스탄다기 아슈틱)은 1930년대 소련 대기근의 일부로,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150만 명(최대 230만 명)이 아사한 기근이다. 그 중 130만 명이 카자흐인으로, 이 기근으로 전 세계의 카자흐인 중 38%가 죽었다. 이로써 카자흐인들은 1930년대 소련 대기근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민족이 된다.[1][2] 현재 카자흐스탄에서는 당시 농업집산화 책임자였던 필리프 골로슈쵸킨의 이름을 따서 골로슈쵸킨 집단살해(카자흐어: Голощекин геноциді [ɡɐləˌʂʲokʲin ɡʲinɐˈt͡sɪdɪ̞̃])라고 한다.[3]
1929년에서 1932년 사이 카자흐스탄의 가축과 곡물 생산량의 3분의 1이 외부로 유출되었으며, 1930년 한 해에만 100만 톤의 식량이 도시를 부양하기 위해 농촌에서 압류되었다.[4] 집산화 정책이 시작되기 직전 카자흐스탄에는 4050만 마리의 가축이 길러지고 있었으나 1933년 1월 1일에는 450만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이 기근의 결과 카자흐인의 인구는 카자흐스탄 SSR에서 38%밖에 차지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카자흐스탄에서 카자흐인이 정작 소수민족이 되었다.[5][3][6][7]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NICCOLÒ PIANCIOLA (2001). “The Collectivization Famine in Kazakhstan, 1931–1933”. Harvard Ukrainian Studies 25 (3–4): 237–251. JSTOR 41036834. PMID 20034146.
- ↑ Volkava, Elena (2012년 3월 26일). “The Kazakh Famine of 1930–33 and the Politics of History in the Post-Soviet Space”. Wilson Center. 2015년 7월 9일에 확인함.
- ↑ 가 나 Қазақстан тарихы: Аса маңызды кезеңдері мен ғылыми мәселелері. Жалпы білім беретін мектептің қоғамдык- гуманитарлық бағытындағы 11-сыныбына арналған оқулық / М.Қойгелдиев, Ә.Төлеубаев, Ж.Қасымбаев, т.б. — Алматы: «Мектеп» баспасы, 2007. — 304 бет,суретті. ISBN 9965-36-106-1
- ↑ Isabelle, Ohayon. “The Kazakh Famine: The Beginnings of Sedentarization”. 2019년 5월 2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9년 12월 17일에 확인함.
- ↑ Татимов М. Б. Социальная обусловленность демографических процессов. Алма-Ата,1989. С.124
- ↑ http://world.lib.ru/p/professor_l_k/070102_koval_drujba.shtml - "Запомнил и долю казахов в пределах своей республики - 28%. А за тридцать лет до того они составляли у себя дома уверенное большинство"
- ↑ PIANCIOLA, NICCOLÒ (2001년 1월 1일). “The Collectivization Famine in Kazakhstan, 1931–1933”. 《Harvard Ukrainian Studies》 25 (3/4): 237–251. JSTOR 41036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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