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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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일 金海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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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김성술 金成述 |
출생 | 1946년 8월 2일 미 군정 조선 경상남도 통영군 충무면 |
사망 | 1971년 12월 25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대연각 호텔 | (25세)
성별 | 남성 |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직업 | 가수, 작사가 |
장르 | 트로트 |
활동 시기 | 1967년~1971년 |
학력 | 통영고등학교 졸업 |
김해일(金海日, 1946년 8월 2일트로트 가수 겸 작사가였다. 그의 본명(本名)은 김성술(金成述)이며,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경상남도 통영 출생이다.
~1971년 12월 25일 )은 대한민국의22세 때였던 1967년 《동백꽃이 필 때면》이라는 노래로 가수 첫 데뷔를 하였으며, 1970년에는 김해일(金海日) 자신이 작사하고 부산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겸 작곡가 황선우 음악가가 작곡한 《돌아와요 충무항에》라는 노래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훗날 각각 이 곡의 작곡자인 황선우가 가사를 개사하여 1971년 가수 나훈아(羅勳兒)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새로운 가사의 노래와 1972년 가수 조용필(趙容弼)이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새로운 가사의 노래로 각기각기 다시 불러 큰 히트를 기록했던 바 있으나 아직도 정작 김해일(金海日)의 《돌아와요 충무항에》라는 곡은 거의 경상남도 도민들로부터 그저 그런 인기를 얻은 것에 그쳤다.
그러나 한편, 김해일(金海日)은 길다면야 길고 그와 동시에 짧다면야 짧다고도 할수가 있는 4년간 그 동안의 가수 활동 당시, 경상남도 도민들과 부산직할시 시민들로부터는 나날이 갈수록 상당히도 남부럽지 않은 음악적인 인기를 누렸으나 26세 때였던 1971년 12월 25일, 서울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으로 사망(사고사)했다.[1][2]
학력
[편집]히트곡
[편집]- 《동백꽃이 필 때면》(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 《떠나간 당신》(황선우 작사, 황선우 작곡)
- 《돌아와요 충무항에》(김해일 작사, 황선우 작곡)
- 《믿어 주세요》(김해일 작사, 황선우 작곡)
- 《쓰라린 상처라면》(김해일 작사, 황선우 작곡)
각주
[편집]- ↑ 대한민국 정부 (법제처), https://www.law.go.kr/ (2006년3월17일). “국가법령정보센터-판례정보”. 《https://www.law.go.kr/%ED%8C%90%EB%A1%80/(2004%EA%B0%80%ED%95%A94676)》. 2022년 11월 16일에 확인함.
|웹사이트=
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 “돌아와요 충무항에 / 발길 돌리는 여인”. 2022년 11월 16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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